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으로 ‘권력형 성범죄’가 또다시 사회적 이슈로 부각됐다. 조직의 권력자는 조직 내 구성원을 통제하고 복종시킬 수 있는 힘을 쥐고 있으며,직접적인 폭행이나 협박 없이도 자신의 권력이 미치는 범위에서 타인의 심신을 괴롭힐 수 있는 수많은 사회적·경제적 수단을 갖고 있다. ‘위력에 의한 성범죄’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또 엄중한 법의 심판이 필요한 이유다.

가해자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인 줄 암에도 불구하고, 지위가 높은 자신에게 소위 말하는 백도 없는 을이 설마 반항을 하겠냐는 왜곡된 생각을 가진다. 피해자에 대한 미안함이나 사과할 마음이 없다. 당연히 반성하지 않는다. 실제 권력형 성추문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가해자들은 피해자에 대한 반성과 사과 대신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한다. 왜 그럴까. 인간을 공격적이고 몰염치하게 만드는 권력의 속성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권력자가 되면 남의 눈치 안 보고 본인의 주장대로 하는 일을 진행하는 것 을 반복하기 쉽다. 이런 상황은 체내 호르몬을 변화시킨다. 공격성을 부추기는 테스토스테론 분비는 증가하고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코르티솔 수치는 낮아진다. 남의 눈치를 볼일이 없으니 당연히 타인의 감정에 귀 귀울일 필요가 없다. 그러니, 공감 능력을 담당하는 신경세포가 차츰 비활성화된다. 그 결과 권력자는 나날이 오만불손하고 뻔뻔스러운 사람으로 변모한다.

권력형 성추문은 사회 유명인사의 민낯을 보는 또 하나의 비난거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박 전 시장이 여성 인권을 향상하려고 노력했던 명망가인 데다, 성추행 피의자로 지목되자 자살이라는 극단적 반응을 보인 것으로 추정돼 국민적 충격이 크다.

정신의학적으로 인간의 내면에는 본능에 따라 쾌락을 추구하고픈 욕망(id), 본능과 현실 사이에서 초래되는 갈등을 조정하고 타협점을 찾으려는 자아(ego), 그리고 도덕과 양심으로 대변되는 초자아(superego)가 공존하며,이 세 요소가 적절히 조화를 이룰 때 균형 잡힌 인격을 갖게 된다. 예컨대 성추행 유혹이 일면 후유증을 인지한 뒤, 이성을 발휘해 충동을 억제하면 된다.즉,이성적으로 통제할 수 있으면 된다.

성희롱·성추행·성폭행 등 종류를 막론하고 모든 성범죄는 이성이 욕망을 조절하지 못해 발생한다. 성욕 충족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공격성·힘·권력·의존심 등 비성적 욕구를 충족시킬 목적으로 사용되는 일도 많다.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뻘 되는 중·노년 남성에게서 권력형 성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다.

사람은 누구나 겉과 속이 다른 면을 갖고 있다. 장 자크 루소처럼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이자 위대한 교육론자지만 자신의 아이들을 소란스럽고 양육하는데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고아원에 맡겼다. 분석심리학자 카를 융은 인간의 내면에는 겉으로 보이는 가면 인격인 페르소나(persona)와 무의식에 존재하는 어두운 그림자(shadow)가 있으며, 성숙한 인격을 추구하는 것은 무의식을 의식화시켜 나가는 ‘고통의 과정’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따라서 언행이 불일치하는 누군가를 무작정 손가락질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의 어두운 측면 때문에 피해를 보았다면 가해자를 비난하고 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 예컨대 루소가 교육 분야에 큰 업적을 남겼더라도 고아원에서 자란 자녀들은 아버지 루소를 비난하고 원망할 수 있다. 박 전 시장 사건도 마찬가지다. 성추행 피해자는 자신의 입장에서 합법적인 방법으로 원하는 바를 진행할 권리가 있다.

반면 박 전 시장 지지자라면 우선 유가족을 위로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방법을 찾는 게 옳다. 2차 가해가 아니라 말이다.